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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피로회복제


친구들과 붙어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던 것만 같던 중학생 때나,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또 가정을 꾸리고 남편이라는, 그리고 아빠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 지금이나, 용돈에 조금의 여유만 생겼다 싶으면 음반매장을 기웃거리는 걸 보면 겉모습은 많이 늙었지만 내 정신연령은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십년 이상의 세월을 따라다녔던 '학생'이라는 이름은 이제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고 '아저씨'라는 호칭이 보다 익숙해진 지도 벌써 여러 해. 비록 최근에는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덕에 원빈 정도는 되어야 아저씨 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월급쟁이 생활도 어느덧 십 년째에 접어들어 어지간한 일에는 불평하는 것조차 귀찮을 지경이 되었고, 어제가 오늘 같고 어제 일인지 일주일 전의 일인지, 어제 점심 저녁 메뉴는 무얼 먹었는지... 돌고 도는 일상에 푹 쩔어 지내다 보면 정말 내가 뭘 하고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또래/연차의 직장인들이라면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인원은 줄고 잡다한 일거리들은 오히려 늘어난 데다 경영난을 이유로 소위 '최소 인원으로 최고의 효율'을 추구한다는 회사.
머 발상 자체야 잘못된 것이 아니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소모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다.
한때는 자그마한 음반점을 운영하면서 좋아하는 음악도 원없이 듣고, 취미로는 그림과 악기연주를 즐기며,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과 음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는 나의 모습을 꿈꾸기도 했지만 요즘 같아서는 음반점 같은 걸 차렸다가는 얼마 못가서 문을 닫게 될 테고, 무엇보다 그런 일을 시작할 만큼의 돈도 모아놓질 못했으니... 

출퇴근길 외국어 공부를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출퇴근길 버스에선 대개 졸기에 바쁘고, 가끔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서 언덕길을 넘어 되돌아 걸어오기도 한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천사처럼...은 아니지만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별 희한한 자세로 잠자고 있는 아들놈과 늦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려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내를 보면서 박카스 광고처럼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을지 몰라도 나의 피로회복제는 가족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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