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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쓴다.

 

추석을 앞둔 주말,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버지보다 조금 더 연세가 많으셨다고 기억되는, 아마도 친구의 결혼식 때 이후로는 뵙지 못했던.

 

중1때 같은 반이 되었고 내 바로 뒷 번호였던, 팝송과 만화 그리고 엄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던 그 친구. 각자 가정이 있고 일도 바쁘고 사는 곳도 그리 가깝지 않아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연휴 직전이라서인지 빈소를 지키는 가족들 외에는 조문객도 거의 볼 수 없었던.

 

코로나 시국에 추석 연휴 이동을 자제하자는 분위기로 올 추석에는 본가에도 가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친구 아버님 빈소에 다녀오고 나서는 뵐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다녀와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고

오지 말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막상 손주들 보시고 좋아하시는 부모님 얼굴을 보니 가서 뵙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이 코로나 시국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추석 연휴가 끝나 가는 주말, 대학 동창회 밴드를 통해 접하게 된 선배의 부고.

호리호리한 몸에 아이 같은 미소를 띤 얼굴, 뒤로 묶은 긴 머리에 검정 뿔테 안경, 담배와 팩소주.

본래 그림에 뜻이 있었으나 건축 전공으로 선회한 이력이 나와 비슷했던,

 

취업 재수생으로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던 시절, 그 선배는 꽤 유명한 건축가가 운영하는 사무소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날 내가 일하던 편의점에 그 건축가가 담배를 사러 들어왔던 사건이 있었고

그것은 어떤 계시와 같다고 생각했던 나는 선배에게 그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며 되도 않는 부탁을 했었다

물론 돌아온 답은 NO 였지만.

그러고 나서는 또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도 못한 채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영정 사진 속 얼굴로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6월에 있었던 건축사 시험에서 합격해 무척 기뻐했다고 하는데,

합격자들에게는 이달에 자격증을 등기로 발송된다고 하는데...

열심히 살아 온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결말이 아닌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프리다칼로는 습관처럼 또 하루를 견뎌내는 것이라고도 했다.

 

오늘 하루를 잘 견뎌낸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내며

故 최준수 선배의 명복을 빕니다.

 

형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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